“한국인의 고단함 보살피려 신이 그를 보냈다”평택출신 국악천재 지영희선생‘특별전’평택호 예술관에서
평생 ‘흥’연주했던 ‘한’맺힌 국악인 평택에서 재조명해야
비운의 천재라는 말로 그를 다 표현하기에는 모자람이 있다. 한국 근현대사 100 여 년을 통틀어 민속음악 첫 손에 꼽히는 인물, 지영희 명인(1909~1980, 평택 출신). 살아생전 “국악의 흥을 온 국민이 나눠야한다”며 국악 대중화, 세계화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선생에 대해 ‘지영희 평전’을 썼던 노동은 교수는 그를 ‘근대음악의 아버지’라 칭했다. 그만큼 국악을 체계화하고 집대성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선생은 세습 무당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승무·검무 등 여러 춤을 배웠다. 그밖에 호적(胡笛), 양금·단소·퉁소, 해금·풍류 시나위, 피리 삼현육각(三鉉六角), 대금 시나위, 무악장단, 경기소리·서도소리까지 남들은 하나도 힘든 것을 민속음악 전 분야에 걸쳐 배우지 않은 게 없고, 가르치지 않은 것 또한 없었다. 선생은 일반인에겐 이름도 생소한 민속악기와 무속음악, 농악, 경기민요 등을 망라하여 이론을 체계화하고, 기록하고, 가르치기를 즐겼다.
천재적인 악사이자, 교육자, 기록자, 작곡자, 국악관현악단 창립자라는 전무후무한 천재가 왜 우리에겐 이름조차 낯설기만 할까? 악성이라 추앙받는 베토벤이나 만인에게 사랑받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보다 어색할까?
지영희 선생의 유가족인 가야금 명인인 지순자 교수(수임당 대표)는 “지영희 선생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그 이유를 말한다. 지영희 선생이 국악 대중화를 내세우자,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던 제자들은 중요무형문화재 시나위보유자였던 선생을 신문지상을 통해 국악협회에서 제명시켜 버린다. 그들은 선생을 밟고 호가호위하며 국악계를 쥐락펴락했다.
국내에서 국악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선생은 결국 해외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해야 했다. 온 국민에게 흥을 나눠주기 위해 평생 ‘흥’을 연주했던 국악천재, 지영희 선생의 ‘한’맺힌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 국내 최초로 선생의 친필일기와 악보, 육성이 담긴 음반 등을 대거 전시하는 <지영희 특별전>이 31일부터 내년 3월까지 평택호 예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회는 평택-아산이 공동으로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고 콘텐츠 및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기 위한 평택-아산연계협력사업의 일환으로 평택시 주최·경기관광공사 주관으로 국악음반박물관, 한국종합예술학교, 국제대학 건축학과, 평택문화해설사협회, 내기초등학교 지영희국악관현악단 등이 후원한다.
한국인의 정서를 ‘한’이라 말하는 이가 있는데, 지영희 선생은 ‘한’이 아니라 ‘흥’이야말로 우리 정서 바닥을 흐르는 정서라고 보았다. ‘흥’을 노래하고, ‘한’을 풀어주는 노래가 민족음악이라고 설파했던 선생에 대해 이번 전시회를 공동기획한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은 “한국인의 고단함을 보살피려 신이 그를 보냈다”고 표현했다.
이번 〈지영희 특별전〉은 바로 선생의 위대함을 조명하고 그동안 알져지지 않았던 숨겨진 이야기까지 전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회에 지영희 선생 미공개 음반을 제공한 노 관장은 “평택이 선생을 재조명하고, 경기도를 넘어 국악을 세계에 알려 아픈 상처가 치유되는 전시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관련기사 경기도 양평 국악음반박물관 관장 노재명 인터뷰 기사 참조
고기복 기자 webmaster@pt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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